금요일 오전, 갑작스럽게 받은 연락 한 통에 놀란 나는 부랴부랴 삼성 서울 병원으로 향했다.
외국에서 오래 지내다 두어 달 전쯤, 한국으로 들어온 지인의 연락.
가족도 없이 병원 갈 생각에 앞이 캄캄했던 모양이다.
말로는 병원온 김에 얼굴 한 번 볼까 싶어 연락했다지만, 내 직감은 그게 아니었다.
두어 달 전쯤에 본 지인의 안색이 영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형병원에 예약할 정도면 그전 1차 병원에서 어떤 징후라도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디야?"
"병원."
"그러니까 병원 어디냐고?"
"본관 흉부 엑스레이실."
삼성 서울 병원은 집에서 가까워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물론 심심해서 간 건 아니고 이 역시 누군가 아파서 갔었던 곳이다.
어쨌든 나는 본관에 도착했고, 어렵지 않게 흉부 엑스 레이스를 찍는 곳으로 향했다.
일단 검사는 눈 깜짝할 새도 없이 끝난다고 했다.
병원에 들어가려니 qr출입증을 발급해야 한다고 해서 보호자 자격으로 왔다는 체크와 함께 문진표를 작성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을 뚫고 도착한 흉부 엑스레이실 앞.
의자가 즐비한 곳에 앉아 검사를 마치고 연락 주기로 한 지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일 아니길 빌며 잠시 명상에 빠지듯 했다.
눈앞엔 온통 환자와 보호자들 뿐이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대형병원을 가면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채워진다.
'금세라더니?'
벌써 이십 분이 흘렀다.
일부러 흉부 엑스레이실 통로 쪽으로 가봤다. 하지만 그렇게 붐빈다는 느낌은 안 든다.
괜히 초조함이 심장을 흔든다.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자니, 집중이 안된다.
그렇다고 오고 가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뭔가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액자 그림이 걸려있다.
괜히 가만있기 뭣해서 사진으로 남겼다.
굳이 그림 제목은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그림의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저 그림을 찍는데 의의를 둘 뿐이다.
"응. 끝났어?"
"아니... 지하 3층에 있어."
"거긴 왜?"
"mri실. 그냥 본관 중앙에 큰 원무과 있는데 거기서 기다리는 게 좋겠어."
"... 그래. 그럴게."
mri검사까지 받는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단순히 흉부 엑스레이만 찍으려고 이 큰 병원으로 오진 않았을 테니, 이해는 한다.
나는 본관 중앙으로 발길을 돌렸다.
갑자기 숨이 막힐 정도로 그곳은 꽤 북적댔다.
아무래도 원무과이자, 입원 수속을 밟는 곳이기에 그 모양새는 당연했다.
사실 무슨 mri 검사를 받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침체되어 있어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일단 모든 검사가 끝나길 기다릴 뿐이다.
하....
괜한 한숨이 쏟아진다.
병원이란 곳은 사람의 기분을 다운시키는데 일조를 한다.
그래서 이런 곳은 오기가 싫다.
심리적 긴장과 두려움을 심어주는 곳.
여하튼 저번 주는 내 건강검진으로 병원에 찾았고, 이번 주는 지인의 검진으로 병원에 찾았다.
괜히 씁쓸한 기분이 올라온다.
나는 더 침체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좌측에 위치한 조그마한 커피 매장에서 라떼 한잔을 주문한 뒤, 병원 밖으로 나갔다.
우측에 보이는 간이 벤치.
그곳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그러고 있으니 괜스레 서글퍼 눈물이 핑 돌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있어, 얼른 고개를 숙였지만, 눈가의 촉촉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별일 아닐 거야! 주책 떨지 마.'
혼자 주문을 외듯했다.
이어 심란한 마음도 잠재우기 위해 일부러 딴생각을 했다.
그렇게 있길 한 시간 째.
드디어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는 말과 함께.
하지만 나는 이런 틈을 타서 얼굴 한번 더보는 거지, 했다.
우리는 병원을 벗어나는 동안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후 가까운 밥집으로 갔다.
"곰탕이 당기네."
검사 때문에 굶은 지인이 일부러 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속 깊은 얘기 대신 곰탕만 먹었다.
물론 본격적인 얘기는 카페에 가서 했다.
"간암?"
"으응."
"결과는?"
"다음 주 화요일. 의사 선생님이 패스트 검사하자고 해서 결과도 빨리 나와."
"몇 시야? 같이 가줄게."
"아니야. 그땐 혼자 있고 싶어."
"... 꼭 그래야겠어?"
"으응...."
가족도 없이, 혼자?
그 말을 삼키던 나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우리는 그렇게 한 십 분을 넘게 각자 딴청을 부렸던 것 같다.
"수술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아니... 수술을 못할 정도로 안 좋으면...."
"에이, 결과도 안 나왔잖아. 그런 생각은 하지 마."
"해야지. A케이스, B케이스 등의 결과에 따라 내가 어떻게 선택할지는 미리 생각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듣고 보니 지인의 말이 옳다.
결과 듣고 멍하니 있는 것보다, 케이스별 결과에 따라 어떤 액션을 취할지는 미리 생각하는 게 환자 입장에서는 낫다.
1차 병원에서 간암 의심이 든다고 한다.
우측 배가 결리고, 소화도 잘 안 되고 허리 통증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안색이 안 좋은 걸 본인도 감지했고, 몸무게도 최근 7kg 이상 빠졌다고 한다.
"가족들은 안 들어와?"
"거기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서...."
"그럼 검사 받은 건 알아?"
"자세한 얘긴 안 했어."
"왜?"
"그렇게 됐어...."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끊어졌다.
더 깊숙한 물음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았기에 멈췄다.
지인은 내게 폐 끼치는 것 같다며 끝내 결과 예약시간은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마음이 안정되면 이후에 연락을 주기로 했고 헤어졌다.
중년이 되면 사실 큰 관심사는 건강 문제다.
돈이고 자식이고 간에 자기 건강이 우선시 되어야 다음일을, 또 다음 걱정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건강은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야 한다고 했다.
음식, 운동은 기본이다. 다만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문제, 이걸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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